나의 편지

사랑하는 자매님께..

피조물61 2009. 2. 10. 12:50

    최자매님께... 오늘은 남편이 출장가고 조용한 시간이 허락되어 글을 써 봅니다. 비록 서툰 표현이 있을지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자매님과 대화할때마다 순수하고 단순하신 모습에 감탄을 합니다. 좋은 것을 주시려는 자매님의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지기에 이렇게 글을 적어보게 되었습니다. 자매님과 저는 한결같이 하나님나라가 속히 오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고 그자리에서 우리는 하나이고 서로가 필요한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자매님이 늘 말씀하시는 대로 성경을 보고 묵상하고 실행하고 기도해서 이 땅위에 하나님나라가 이루어 질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탄을 물러간다면 오래전에 천국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은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보았지만 사탄이 끈질기게 따라붙기 때문에 하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비법을 쓰시게 된것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2장2절 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중에서 예수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많은 지식과 학문을 가진 베냐민지파의 사람이고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입니다. 율법으로나 가문으로도 완전한 바울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 하였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배설물처럼 버리기를 원한다 하였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안에 다른 많은 실행들이 들어와서 본질이 흐려졌기 때문에 바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십자가만을 알기로 작정하였다 한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어리석도다 갈라디아사람들아!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하노니..하였습니다. 바울은 모두가 오직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자리만 보기를 원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아무것도 아닌 자리..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오직 하나님의 뜻만 있는 자리에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이고 분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정통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가르켜도 교리안에서는 절대로 하나될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알고 있는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리안에서는 절대 연합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으로도 하나될수 없고 실행으로도 결코 하나될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성경에서도 명백하게 볼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모든 사람이 연합해서 하나님나라가 될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탄이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가를 알면 쉬워집니다. 사탄의 목표는 우리가 분열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정말 옳은 것으로 좋은것으로 서로 분열시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십자가로 가신 것입니다. 모든 규례와 역사와 교리를 끝내기 위해서.. 오직 우리가 십자가의 자리에 있을 때 사탄의 능력은 무의미해집니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내뜻대로 마시고 하나님뜻대로 하소서!하는 자기의 필요가 끝난 사람에게는 속일 미끼가 없기 때문입니다. 안다는 것도 끝나고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도 끝나고 선하다는 것도 끝나고 아무것도 할수 없는 자리..그 자리에는 사탄이 있을곳이 없고 분열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이 하나로 만날수 있기 때문에 예수는 마지막에 십자가의 자리로 가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을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니라”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책입니다. 바울은 사람이 죽지않고 영원히 살수있다는 것을 전한 것이 아니고 오직 십자가에 못박혀 피조물의 운명을 보여준 예수가 사탄에게 속아 하나님같이 높여진 모든 인생을 구원할수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대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실행을 해도 사탄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십자가의 길은 절대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숨어있을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지식만이 참되고 오직 내가 믿는 종교가 옳다는 생각안에는 사탄이 숨어 있을수 있습니다. 성경은 선악의 노선에서 생명의 노선으로 옮겨져서 부활생명의 경험을 체험한 앞선 자들의 간증을 적은 책입니다. 그래서 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보면 지식이 되고 객관적인 것이 되고 생명이 아닌 것을 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다속을 헤염쳐본 사람이 적어놓은 교본을 헤염쳐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보고 가르킬수는 있지만 그것은 지식입니다. 헤염교본을 본적은 없지만 헤염을 잘 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실제이고 헤염교본을 완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안에서의 부활생명의 경험이 성경을 완성하는 일이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자리에서는 분열이 없습니다. 흙이 어떻게 분열하겠습니까? 흙이 어떻게 내가 아는것만이 진짜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옳은것도 끝나고 선한 것도 끝나고 할수있다는 것이 모두 끝난 빈그릇으로 남은 사람을 쓰실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고 모세가 그렇고 야곱이 그렇게 쓰여졌습니다. 하나님이 이끄는 대로 살수밖에 없는 사람, 이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 피조물의 자리를 지키는 자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피조물인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의 삶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내 수준이상은 절대 볼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 원대로 자기 필요대로 성경을 해석하며 실행함으로 많은 분열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알고있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면 우리는 사탄에게 속지 않습니다. 인생의 문제는 죽는것도 병드는 것도 고난도 아닙니다. 피조물이 사탄에게 속아 하나님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차가 레일을 벗어났듯이 사람이 사람의 자리를 벗어나 영원히 죽지않는 천사를 흠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죽었다)라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입장에서는 죽음이 있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죽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앞에 사람은 영원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주인은 필요할때마다 열매를 먹기위해 열매를 곳간에 거두어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주님의 열매들입니다. 우리는 매일 사과를 먹을수 있습니다. 사과의 입장에서는 매일 죽지만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과는 영원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껍데기는 없어지지만 씨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자매님과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유가 있어 붙여주셨다 생각합니다. 서로가 옳다하는 것으로는 만날수가 없고 아무것도 내세울수 없는 피조물의 자리에서 만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제자리에 있으면 하나님이 일하실것이니 걱정할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참된 믿음일것 입니다. 자매님과 만남이 하나님의 경륜안에서 영원한 만남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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