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안에서-부활생명
진리안에 산다는것은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모른다.
그것은 인생에게 주어진 가장 존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진리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않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내가 그렇치 않았던가?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진리밖에서 어둠속에서 산 나날들이었다.
1차적인 생명인 동물의 수준에서 산것들이었다.
동물들도 진한 모성애가 있고 종족보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것들도 있다.
어쩌면 인간보다 진실하고 솔직하다.
인생의 존재적인 진실이 보이지않기에
우린 어쩔수없이 어둠속에서 허공을 치면서 수고와 땀을 흘리고 있는것이다.
감정과 느낌의 변화로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면서..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보여진 인생의 존재적인 진실은
산혼의 지정의를 자극하여 느낌과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것이 아니다
이 진실은 사실이다.
사실은 감정과 느낌보다 더 우선한다.
예수는 십자가의 죽음에서
아무것도 덧 입혀지지 않은 인생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줌으로
피조물의 위치를 조금도 흠이 없이 그려냈다.
완전한 피조물을 보는데 그 피조물을 지으신 분이 보여진다.
그 피조물이 너무나 완전하고 진실한 것이기에
지으신 분의 형상과 모양이 나타난다.
완전한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을 만든 이의 이미지가 떠올려지듯이..
진실이라는 작품을 보니 진실에 대한 실제가 어울러져 보인다.
진실이신 아들을 보니 그 아들을 낳은 아버지가 같이 떠오른다.
아버지안에 아들이 아들안에 아버지가 있는 한 실제가 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를 보는데 그 실제가 보여진 것이다
그 실제는 부활생명이었다.
예수는 부활생명을 살고 있었다.
감정과 느낌같은 지정의에 의존하는 일차적인 생명과 함께
예수는 또 다른 이차적인 생명안에서 살고 있었던것이다.
이것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한 그 생명이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한 생명이고 사도들이 누린 생명이며
또 멀리 미래에도 살아지게 될 영원한 생명이었다.
이 부활생명이 있기에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것이다
모든 만물보다 위에 최종적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것이다.
부활생명을 표현하기 위해서!
할렐루야!
대구교회 남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