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안에서 가장 정의롭고 사회문제에 깊이 간여한 인물은 세례요한일것이다. 제사장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불의한 유대종교에 대항해 거룩한 양식과 세마포옷을 포기하고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짐승의 가죽옷을 입고 홀로 살았다. 그리고 유대왕인 헤로데왕의 불의한 사생활을 비판하다가 목이 잘리는 불운을 겪게된다. 사회정의를 위해 옳은 말을 하였지만 결론은 목짤림을 당하게 된것이다. 성경에는 세례요한이 부활했다는 말이 없다. 그 세례요한이 옥중에 있을때 예수에게 제자들을 보내 "장차 오실이가 당신이니까(이 불의한 세상을 평정할)하고 묻자 예수는 동문서답을 하신다.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죽은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전하라"하신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종합병원 내지는 자선센타라도 차리시겠다는 말씀이셨을까? 그 말씀은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의 해답을 말씀하신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눈이 있으나 보지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못하고 코가 떨어져나가고 살점이 떨어져나가도 무감각한 문둥병자처럼 죄와 사망에 대해 무감각한 인생들을 향해그리스도가 본질적인 해답임을 말씀하신것이다. 인생의 문제는 마치 나갈곳이 없는 미로와 같다. 배고픈자를 먹여줘도 끝이 없고 병든자를 고쳐줘도 끝이 없다. 노사분규를 해결해도 끝나지않고 전쟁을 해도 끝나지않는다. 해결한듯싶은데 또 스프링이 달린 장난감처럼 더 강력하게 튀어나오고 만다.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는 육신의 배고픔이나 병때문이 아니라 영혼의 타락과 오염에 있기 때문이다. 오염된 낙동강물을 아무리 정화시킨다해도 그 근원이 오염돼있다면 끝이 없는 일이 될것이다. 그리스도는 인생의 잡다한 문제와 바램을 해결하기위해 오신것이 아니다 보다 근원적이고 존재적인 영원한 해답을 가지고 오신것이다. 산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큰 건물이나 작은 건물이나 언덕이나 모두가 납작하게 보인다. 그속에서 살때는 이런문제 저런문제 복잡하게 살았지만 조금 더 높고 넓은 시야에서 문제를 본다면 간단해진다는것이다. 인생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우리의 자리를 옮기는것이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것으로 아담안에서 그리스도안으로 물질적인 것에서 인격적인 것으로 소유에서 존재로 새로운 인격으로 다시 나지않는한 인생의 문제는 끝나지않는다. 세상은 언제나 문제의 해결을 위해 상대방의 피(죽음)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방법안에서는 근원적인 답이 없다. 세례요한안에서는 인생의 문제가 끝날수없다. 나의 죽음이 없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한다면 내 목이 잘리든지 상대방의 목을 자르든지 할수밖에 없다 그것이 선악과로 짜여진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이기때문이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생의 문제를 끝내신 그리스도가 바로 모든 문제의 해답인것이다. 아담을 끝내시고 그리스도안에서 다시 사시어 다시는 목마름이 없고 다시는 배고픔이 없는 아름답고 풍성한 세계로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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